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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비움의 실천을 도와주는 당근 마켓(Danggeun Market)

jodawoom 2020. 11. 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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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뒤늦게 당근 마켓 어플을 설치해서 중고 거래를 해봤다. '중고로운 평화나라'로 불리는 온라인 중고거래의 강자 [중고나라]의 황당하고 웃긴 해프닝부터 심각한 범죄에 해당하는 사기 행각들 때문에 온라인 중고 거래에 대해서 안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 셋을 키우시는 이모의 후기와 추천으로 언젠가 나도 중고 거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사무실 정리 및 내 방도 정리하면서 처음으로 당근 마켓을 이용해봤다. 

 

처음 어플을 설치하고 내 닉네임을 설정하고 동네를 인증했다. 가입 절차는 무척 간단해서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많이 이용하시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사무실 동네 이렇게 두 곳을 인증 성공! GPS기반으로 인식해서 타지역에 가게 되면 인증해야 하는데 그러면 왔다갔다 해야 하는 범위가 커지거나 동네에서만 거래를 하게 되는 게 좀 불편한 점이긴 했다. (불편한 점부터 인식함)

 

그래도 내가 꽤 안정감을 느꼈던 것은 바로 '매너 온도' 시스템이다. 구입하는 사람이 판매자를 평가할 수 있고, 판매자도 구입자를 평가할 수 있다. 판매자가 구입자가 되기도 하고 구입자가 판매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진상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당근 마켓의 쾌적하고 매너 좋은 거래를 도와주는 것 같다. 

 

방 정리를 하면서 나온 물건들과 내가 리뷰하고 테스트 했던 제품들을 올렸다. 판매 물건 등록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최대 4장까지의 사진과 심플한 설명과 적절한 가격 설정을 할 수 있고 피드 형식으로 물건들이 보여지기 때문에 묻히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끌어올리기'를 누르면 피드에 내 글을 다시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쓸 물건들도 아니면서 피드를 휙휙 내리고 올리다보면 나도 모르게 '어머, 이건 사야해' 하면서 관심 물건으로 등록하고 있다. 당근 마켓 빠지면 두 시간 순삭됨.

 

또 재미있었던 점이 비슷한 게시글을 올리시는 분들의 게시글 밑에 전문 업자인지 아닌지 투표하는 항목도 있었다. 사실 공장이나 가게를 정리하셔서 처분하는 마음으로 싸게 올리시는 분들도 계시고 구매자 입장에서도 그렇게 나쁘게 생각 되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선량한 분들보다는 이런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을거기 때문에 나쁘지 않은 투표인 것 같다. 방식은 좀 애매하지만.

 

처음으로 당근! 하고 채팅 알림이 울리자 얼마나 떨리던지! 매너 온도 이게 참 무서운게 잘 보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채팅도 매우 공손하게 보내게 된다. 물론 당연한 것이지만... 생판 모르는 타인과 이렇게 화기애애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돈이 왔다갔다하는 이야기를 쾌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첫 거래를 성사시키고 처음으로 구매자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 얼마나 설레고(?) 떨리던지. 친절한 판매자가 되어 내가 내놓은 물건을 잘 포장해서 드리고 돈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면서 나도 모르는 힘이 솟아올랐다. 이것이 돈의 힘이구만. 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고 많이 갖고 있었던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되니 참 좋았다. 거래하면서 재미있는 점은 구매자 분들은 정말 다양한 연령대셨고 모두 매우 친절했다. 물론 중고나라 사람들이 당근 마켓에도 유입되서 이상한 글 올리고 분탕 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사람 만나기를 항상 기도해야 한다. 판매자/구매자 분을 만나러 갔을 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것 같았는데 대화 내용은 안녕하세요, 혹시 당근? 하는 어색한 미소로 인사를 나눈 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게 좋은 순간은 이때 밖에 없는 것 같다.) 물건 잘 쓰세요, 입금 확인 해보세요 등의 간단한 대화만 나누고 뒤도 안보고 헤어지는 '쿨거래' 방식이다. 물론 물건에 하자가 있어서 환불해드리거나 교환해드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직접 얼굴을 보고 같은 지역 내의 사람이기 때문에 더 신뢰가 있는 것 같다. 

 

첫 날 너무 신나서 무려 다섯 분께 물건을 팔았다. 당근 마켓 초보자라서 30분, 1시간 간격으로 왔다갔다 했던 것이다. 집 근처에 잡으면 뭔가 무서워서 집에서 10분 떨어진 지하철역으로 거래 장소를 잡았는데 상대방이 와주신다면 가능하면 집 근처가 좋다. 첫 날 판매하고 다음날 몸살 났다. (..) 

 

당근 마켓 매너 온도를 올리려면 빠른 답장과 매너 있는 거래, 좋은 평가들을 받아야 한다. 약속 시간은 잘 지키는지, 판매자나 구매자 중 누군가가 원하는 거리로 와주었는지, 물건은 설명과 동일한지 등등. 그런데 이 평가 항목들은 매우 당연하고 상식적인 항목들 아닌가? 익명과 온라인이라는 공간을 빌어 저 당연하고 상식적인 것들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으면 이 방식이 각광받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36.5도로 시작한 내 매너 온도도 40.3도까지 올라왔다. 내 물건을 구입하신 분께 잘 쓰시라고 인사를 드리는데 그분이 허탈한 얼굴로 '저는 구매자 30분 째 기다리고 있는데 답장도 없네요...' 라고 하셔서 너무 안타까웠다. 자신의 시간과 돈이 귀한 사람은 남의 시간도 귀한 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아직까지는 나쁜 사람은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마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면서 당근 마켓을 더 많이 애용하게 될 것 같다. 온라인 중고 거래의 단점을 잘 파악하고 당근 마켓 서비스를 구상한 분들의 번득이는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참 부럽기도 하다. 

 

뿌듯한 온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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