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초음파와 성별반전 / 그나마 안정기 효과 / 더위 시작 / 태동의 신비
임신 21주차. 엄마와 함께 가는 즐거운 정기 검진일! 오늘은 정밀 초음파 보는 날이다. 다른 때 보다 오랫동안 아이의 초음파를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두근두근 혈압과 체중을 재고 (500g 늘었다. 과체중이긴 하지만 임신했을 때 몸무게에서 변동이 없다.) 정밀초음파실로 입장!
열매의 모습이 보이고 심장 소리를 들을 때면 언제나 뭉클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잘 지내고 있구나 싶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얼마나 예쁘고 대견한지. 손가락, 발가락 모두 다 다섯개로 정상. 이것도 저것도 다 정상! 초음파 해주시는 선생님께 연신 감사하다고 하고 있었는데...!
"다리 사이에 보이시죠? 성별은 아들이네요."
"네에?!"
고요하고 경건한 분위기의 초음파실에서 엄마와 나는 목소리를 높였더랬지. 그리고 모니터에 확실하게 보이는 무언가...! 지난번에 담당 원장님께서 딸이라고 말씀해주셨다고 했지만 초음파 선생님은 정밀 초음파가 더 정확하다고 하시며 그 때 확인할 수 있는 확률보다 정밀 초음파가 더 정확하다고 하신다. 물론 우리 눈에도 정확히 보이기는 했지만...
아들이라서 싫고 딸이라서 좋고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지난번 포스팅에도 말했듯이 어떤 성별이든 좋고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남편도 딱히 딸을 원한다거나 아들을 원한다거나 하는 뉘앙스를 전혀 비춘 적이 없었다. 지난번 검진 후부터 오늘까지 '공주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성별을 알고 난 후에는 이런 저런 설명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심 억울하기도 했다. 지난번에 사실 성별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을 것 같아 굳이 물어보지 않았는데 원장님이 미리 알려주셨고 꽤 확률이 높다고 하여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흑흑. 주변에 물어보니 요즘은 대부분 많이 가르쳐준다고들 한다. 엄마도 혼란스러우셨는지 원장실 앞에서 대기하면서 계속 실소를 터트리셨다. 남편의 반응도 비슷했다. 성별은 상관 없지만 왜 혼란을 주는 것이냐!
어쨌든 열매는 주수에 맞게 잘 크고 있고 며칠 정도 더 크다고 한다. 감사하게도 나의 체중도 그렇게 늘어난 편은 아니라서 안정기부터 산부인과 가면 엄청 혼난다고 하지만 잘 하고 있다 라는 칭찬까지 들었다. 식욕 감퇴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먹는 양이 임신 초기보다는 늘긴 했지만 일반 사람보다 반만 먹는 것 같다. 요즘에는 워낙 과잉 영양의 시대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규칙적인 생활, 건강한 식습관, 적당한 산책 정도의 운동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아무튼 모든 것이 정상인 것은 무한 감사해야 하는 일이지만 성별반전의 충격은 조금 오래 가긴 했다. 16주 초음파 너무 믿지 마세요.
재미있었던 것은 첫 충격(?)이 가라앉고 열매가 아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다들 좋아해주셨다는 것이다. 양가 모두 남아선호사상 전혀 없으시고 위로 차원에서 해주시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지만 든든하게 첫 아들을 낳는 것이 좋다고 해주셨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내심 아들-딸 남매를 막연하게 꿈꾸기도 했었고 남편이 지어놓은 이름이 꽤 중성적인데 남자 이름에 더 가까웠다. (아들의 징조였던가)
그리고 17주 무렵, 첫 태동을 느끼고 감격도 잠시 엄청나게 태동을 했다. 예민한 편이라 새벽에 태동을 느끼고 깬 적도 많았다. 엄마의 경험으로 나는 꿈틀 하며 태동했는데 남동생은 발로 뻥뻥 찼다고 한다. 그런데 열매는 태동이 아주 활발했다. 딸의 태동이 맞는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왕자님이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고 여전히 마냥 예쁘기만 하다. 조금 아쉬운 것은 20주때 성별을 처음 알았더라면 온전히 기뻤을 것이라는 거... 그게 좀 아쉽다!
18주부터 21주까지 아주 짧은 임신 안정기를 누렸다. 나는 이 기간을 '그나마 안정기'로 부르겠다.
- 그토록 시달리던 불면증이 조금 나아졌다. 새벽 1시 반부터 한번도 안깨고 통잠을 잤다! 원래 화장실 가고 싶어서 3~4번 일어나다 보면 해 뜨는 거 보다가 까무룩 잠드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는 잠을 잘 잤다.
- 헛구역질 횟수 감소. 삶의 질이 올라간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찾아왔다...
- 폭풍 태동의 나날들. 하루 일과 중 가장 기쁜 순간은 태동을 느끼는 것이다. 남편은 번번히 실패하다가 어느 날 꿈틀대는 것을 느끼고 감동의 물결을 같이 느꼈다. 편안하게 누워있을 때, 새벽 시간에 주로 태동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요즘은 수시로 말도 걸어주고 배를 쓰다듬거나 통통 건드리기도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진짜 반응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열매와 교감하고 있는 이 기분은 정말... 천국이다.
이번주는 24주차. 벌써 임신 7개월이다. 후덜덜... 이제 그 무서운 임당 검사를 앞두고 있다. 7월 초 여러 행사로 신경 쓸 일이 많았는데 불면증이 원상복귀 되었고 갑자기 찾아온 폭염에 수박과 보리차로 연명하고 있다. 집에서 스트레칭이나 제자리 걷기라도 하는데 상당히 무기력하다. 하지만 열매를 위해서 힘 내보자. 날이 선선해지면 아마 설렘 반 초초함 반의 출산 준비를 앞두게 될 것이다. 마음 다잡고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아보자.